채코
2024. 11. 22. 12:03
친구의 부부 싸움
저녁을 같이 먹으며 대화를 하다가 남자가 돈이 좀 있겠다 싶어서 연애를 시작한다. 생일이 되면 장미꽃 백 송이는 기본이고 화이트데이 때는 사탕 꽃다발과 대형 곰인형까지 날마다 행복하다. 때는 이때다 싶게 덜컥 임신이다. 아이를 뱃속에 품고 결혼식장에 들어간다. 신혼여행은 멀리 가지도 못하고 제주도에서 달콤하게 보낸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집에 도착하니 남편이 변했다. 성격이 괴팍하고 이기적이며 일곱 가지 반찬이 없으면 밥을 먹지 않는다. 짜다 달다 맵다를 반복하며 숟가락을 내려놓는다. 옷을 반짝반짝하게 다림질하지 않는다고 타박이다. 당연한 것은 시어머님이 남편의 팬티까지 다림질했다는 속설이 있다. 시어머님의 아들 사랑이 대단한 줄은 알겠는데 그로 인해 그녀의 인생은 180도 꺾인다. 자유분방하게 날개를 달며 날마다 즐겁게 놀던 자신의 모습이 사라진다. 임신을 해서 그 좋아하는 술도 즐길 수 없다.
이 스트레스를 어디다 풀어야 하나? 방법을 찾았다. 말 잘하고 인기 많은 그녀는 그때부터 입을 닫는다.
임신하고 우울증까지 겹치니 아예 말을 안 한다. 더는 못 참겠다 싶어서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간다. 남편과 대화가 안되니 안 보는 게 속 편하다. 그런데 어린아이를 두고 일을 나가지 못하니 생활비가 늘 부족하다. 남동생의 집에 얹혀살며 그에게 전적으로 의지한다. 아이가 커가니 돈이 많이 든다. 어린이집에 보내고 시간이 남아 일을 찾지만 마땅히 할 일이 없다. 일 년이 속사포로 지나간다. 더는 안되겠다 싶어서 다시 지옥 굴로 들어간다.
그러나 집에서 싸우는 날이 많아지고 다투기를 반복한다. 늘 돈이 문제이다. 남편이 생활비를 일정하게 주지 않는다. 벌이가 시원치 않다며 자꾸 미룬다.
아이가 점점 커가는데 집은 여전히 냉골이다. 집안으로 들어오기전에 잘 하겠다며 다짐을 받았는데 변한 건지 안 변한 건지 남편의 행동은 그대로이다. 거기다 남편은 아이를 무시하고 기 죽이기 바쁘다. 집에 오자마자 발라당 누워 커다란 티비 앞에서 유튜브를 보는 남편을 보고 있으면 답답하고 목구멍으로 밥이 잘 넘어가지 않으며 늘 불편하다.
저녁에 애들 재우고 혼자 소주 한잔하며 하루를 마치는 날이 점점 많아진다. 그녀는 이혼도 생각해 봤지만 사회 나와서 혼자 아이 둘을 키울 자신이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마음의 병이 늘어만 간다.
그래서 아이들이 20살 되어 독립하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그때가 되면 날개를 달고 훨훨 날 것이다.
체코의 말
왜 집에서 남편과 대화를 안 해? 그게 말이 되는 거야? 날마다 남편 얼굴 보고 할 이야기가 많은데 왜 입을 다물어? 내가 너의 남편의 장점을 이야기해볼까?
내가 본 친구 남편의 장점
1. 입이 살아 있어서 고급 식당을 잘 안다. 같이 다니면 좋은 음식만 먹는다.
2. 외모는 모르겠지만 옷을 깔끔하게 입는다. 단정하게 입어서 불쾌감이 전혀 없다.
3. 무뚝뚝 하지만 술 마시면 말이 많아지고 웃기도 참 잘한다.(나이는 젊으나 옛날 사람이다.)
4. 캠핑을 우리 가족과 같이 가면 아기자기하고 가격이 고가인 물건이 많이 나온다. 고기도 구워주고 요리를 뚝딱뚝딱 잘하고 간이 딱 좋다.
5. 고가의 취미가 진짜 많다. 명품 시계는 아까우니 가끔 나들이 때 차고 암벽을 타고 탁구를 치고 스킨 스쿠버를 하고 고급 자전거를 즐겨타며 최근에는 일본산 오토바이에 빠져 '원주 반계리 은행나무'를 보러 갔다. 또한 천체망원경으로 별을 보며 사색하는 순수한 낭만주의자이다. 취미가 많으니 그가 하자는 대로 따르면 인생이 심심하지는 않아 보인다. 단 하루도 집에 가만히 있을 수 없다.(그래서 돈 없다고 하는 건가?)
6. 말이 없지만 뚝심이 있어서 본인의 생각을 밀고 나가며 그 길이 바른길이다.
7. 아이들과 노는 방법을 모르지만 툭툭 건드리고 장난치는 게 좋다. 딸은 귀엽고 예뻐서 안아주고 끼고 산다. 그러나 아들은 듬직하고 강하게 키워야 하니 막말을 하며 조금 괴롭힌다.(아들이 죽겠다 싶으면 어쩔 수 없다.)
8. 이번 생일에 남편이 백화점에서 고가의 목걸이를 사줬다. 이 정도는 해야 사랑을 증명한다고 보여주고 싶다.
9. 때가 되면 백화점으로 옷 사러 간다. 아이들 옷을 좋은 것으로 사주고 학교 들어간다며 책가방도 사 준다.
10. 아내도 암벽을 배웠으면 해서 등산 학교에 등록시켜 주었다. 쭈빗쭈빗 싫다고 하지만 산에 다녀온 아내의환한 얼굴을 보면 은근히 기분이 좋다. 다음에 같이 자전거를 타고 싶어 아내의 자전거도 비싼 것으로 준비해 놓았다.
남편의 장점만 품고 살라고 친구에게 말한다. 아이들 앞에서 절대 싸우지 말고 나가서 싸우라고 잔소리도 해본다. 그 소리 들으면 가슴 쿵쾅대고 머릿속에 지진이 나는 아이들이 안쓰럽다. 부모의 사랑스러운 목소리를 듣고 자라도 엇나가기 일쑤인데 그 고운 아이들 앞에 두고 돈이 없다. 돈 내 놓으라. 싸우는 어른들이 너무 싫다. 돈이 필요하면 벌면 되고 부족하면 없는 대로 쓰면 된다. 돈이 뭐 대수인가? 돈 때문에 순수하고 어여뿐 아이들에게 피해 주지 말자.
친구 : 너는 남편 잘 만나서 편하게 살잖니? 말도 꺼내지 마라.
나 : 그도 그렇지만 나라고 뭐 고충이 없을까? 서로 이해하고 맞추고 존중하고 살살 긁어주고 사는 거지.
친구 : 말은 잘한다. 돈이 없어 쩔쩔매며 아이들 학원비가 없어서 전전긍긍하는데 그 느낌을 알기는 하니?
나 : 돈이 없는데 왜 학원을 보내. 그냥 집에서 놀려. 도서관 가서 책 보고 이야기하고 놀이터에서 뛰고 노는 게 더 편하고 좋아.
친구 : 나는 그렇게 못해. 아이가 학원에 다니겠다는데 보내야지. 학교 끝나고 태권도 보내 놓으면 내 시간이 남아 편하게 지낼 수 있다 말이지.
나 : 남편이 돈이 없다면서 빗으로 살지 말고 무슨 직장이든 구해야지. 어떤 이가 직장 구한다니까 알아봐 줄게.
친구 : 알겠어.
나 : 그리고 남편에게 칭찬하고 잘했으면 엉덩이도 팡팡 두드리고 서로 존중하며 살기 바래. 네가 이혼해서 아이들 얼굴 구기는 일 없으면 해. 너의 집에 놀러 갔을 때 어린이날인데 얼굴 찡그리며 V자를 그리는 네 딸을 잊을 수 없어. 그 예쁜 얼굴이 그게 뭐니? 남편을 바꾸려고? 그런 말도 말고 애쓰지 말고 네가 바뀌는 거야. 잘하자. 너만 맘먹고 잘하면되는 거야. 그러면 인생이 술술 풀려.
친구 : 네가 내 남편하고 한번 살아보는 게 어때?
나 : 그건 못 하겠다. 미안하다. 내 남편 다루기도 벅차다 말이지. 하지만 나에게 남편 다루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지. "이거해주면 좋겠네. 저것도 해줘라" 시키면서 엉덩이 팡팡 두드리지. 너도 해봐. 아이의 행복이 온전히 너의 손에 달려 있어.
오늘도 남편 엉덩이 팡팡 두드리러 가자.
[시]
엉덩이 팡팡 / 채코
밥 먹으면 팡팡
옷 입으면 팡팡
일 나가면 팡팡
청소하면 팡팡
빨래하면 팡팡
설거지하면 팡팡
쓰레기 비우면 팡팡
날마다 팡팡
엘리베이터 앞에서 팡팡
뽀뽀를 팡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