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친구의 부부금슬
남편은 군대에서 만난 동기들을 아직도 만난다. 한 달에 5만 원의 회비가 그들을 더 단단하게 한다. 통장에 쌓인 돈으로 일 년에 두 번 정도 가족여행을 한다. 돈이 조금 모였을 때 4인 패키지로 3팀이 괌을 간다. 괌에 도착해서 가이드의 안내로 사랑의 절벽을 도착한다. 그중 한 팀의 아들 하나, 딸 하나를 가진 부부의 아이들이 엄마 다리를 붙잡고 쭈빗쭈빗 얼굴도 보여주지 않는다. 나는 좀 괴상하다 싶었다. 맑고 밝은 5살, 6살 아이들이 어째서 웃지를 않고 적응을 못해 힘들어하는지 별나다 싶었다. 크게 신경 쓰지 않고 10살, 7살 내 딸들은 신나게 논다. PIC 야외수영장에서 외줄 타기, 물 폭탄 아주 신이 난다. 잘 노는 아이들을 좋아하고 나도 물에 들어가 흠뻑 젖으며 같이 뒹굴고 논다. 그런데 그 집 아이들과 엄마는 밖에 나오지 않는다. 호텔 안에서 숨바꼭질 이다. 수영장에 발을 살짝 담그며 근처를 맴맴 돌고 엄마 또한 주변을 어슬렁거릴 뿐 물속에 들어오지도 않고 노는 게 영 시원찮다. 그럴 수 있지. 몸이 조금 불편한가 보다 싶어 개의치 않고 나의 가족은 돈이 아깝지 않게 몸이 녹초가 되도록 늦게까지 수영장에서 인어공주 놀이를 한다. 까끔 물개쏘도 보이며 야외 수영장의 주인 노릇을 한다. 그렇게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헤어진다.
갑자기 그 집 남편이 인도로 발령을 받는다. 급하게 내린 결정으로 여행 계획을 짜서 다시 3팀이 만난다. 그 집 아내는 파리하게 힘이 없다. 극도로 열악한 인도의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한숨을 푹푹 쉬며 가기도 전에 새로운 세계에서 적응하는 게 어렵다며 하소연을 한다. 나는 속으로 새로운 세계가 얼마나 즐거울까 싶어서 내심 부러웠다. 그 집 남편은 어릴 적 아버지가 꼭 여행 가면 작은 여행 소품을 사 주었던 좋은 추억을 이야기하며 아이들 여섯 명에게 야광 풍선을 하나씩 선물한다. 평소 여행 가면 아끼느라 절대 안 돼를 반복하며 사 주지 않았는데 나의 딸들은 신이 나서 그 풍선을 받자마자 한 바퀴 돌며 난리가 난다. 쫀쫀한 나의 지갑을 늘 함부로 풀지 않았는데 가끔 아이들에게 보상 없는 선물을 하는 게 좋은 거구나 싶었다. 나의 선물은 보통 책 100권 읽으면 다이소 2000원 상품권 이런 것만 주로 했으니 아이들이 얼마나 숨 막혔을까 혼자 반성하는 시간을 가진다.
삼 년의 시간이 흐르고 코로나 기간에도 잘 버티는가 했는데 그 집 아이들과 아내는 한국으로 먼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는다. 다음 여행지에서 아내를 만나서 그동안의 이야기를 죽 해본다. 산책길에서 아내는 긴 이야기를 한다. 아들을 똑똑하게 키운다며 어릴적에 집에서만 놀게 했다. 밖에서 놀면 공부 습관을 들이지 못한다는 이유로 바둑, 체스, 종이접기, 퍼즐 맞추기 등 앉아서 하는 놀이만 시킨다. 아들은 어린이집도 보내지 않고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간다. 동네 친구와 만나 노는데 운동도 시원치 않고 놀 줄을 모른다. 엄마 밥만 먹어서 인지 아들은 학교 식당에 들어가도 젓가락을 놀리지 않는다. 어찌 되는지 매사에 적응을 못하고 맴맴 돈다. 아들은 남과 다른 모습에 충격을 받아 틱이 온다. 병원에서 진단도 받아보지만 소용없다. 남편 또한 무뚝뚝한 경상도 대구 사람이라 집안일, 특히 아이들 일에는 무심한 사람이다. 그런데 아내, 남편, 아들, 딸은 인도의 삼 년이라는 시간이 가족의 역사를 뒤흔든다. 열악하지만 새로운 환경에서 적응하고 사느라 성격이 활짝 열린다. 인도 집은 주재원들이 주로 사는 비싼 아파트가 아니라 조금 저렴한 단독빌라를 구한다. 그런데 침대 밑으로 한국에서는 볼 수 없는 커다란 바퀴벌레가 기어다니고 벽에는 도마뱀이 수시로 발견되니 아내는 치를 떨고 적응을 못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아들, 딸 모두 집안의 곤충에 관심을 가지고 벽 사이로 기어다니는 개미를 관찰하며 잘 적응한다. 국제 학교에서 영어, 수학, 수영, 미술 등 수업도 잘 따라간다. 친구의 생일 파티도 가서 신나게 뛰어놀며 한국에서의 어두운 모습이 사라진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이 아이들, 아내를 대하는 태도가 변한다. 먼 타지에서 온갖 장애물과 싸우는 안쓰러운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이 서서히 눈에 들어와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다. 아들이 인도의 병원에서 코로나로 쩔쩔매지만 않았으면 2년 정도 더 버틸 생각이었는데 아내의 반대로 한국으로 돌아온다. 남편은 6개월간 인도에서 주말에 혼자서 골프 치고 자유롭게 살다가 가족 품으로 돌아온다. 인도가 한 가족을 살린다. 경험이라는 것이 모든 것을 소화한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아들, 딸 특히 늘 문제가 많은 아들은 학교 수업도 성실히 임하고 적극적인 아이로 성장해 아내는 걱정이 없다. 아내 또한 집안일만 하다가 동네 어린이집 등,하원 도우미로 삶을 다시 산다. 집에만 있지 않고 적극적으로 할 일을 찾으며 본인의 삶을 즐기며 산다고 고백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해 주고 잘한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했다.
부부금슬은 절대
아이를 엇나가게 하지 않아요.
잘하고 있으니 아무 걱정마세요.
어느새 내가 긴 이야기 들어주고 짧게 한마디 하는 '언어의 연금술사'가 된 것처럼 기분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