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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18]시어머님에게 아이 맡기기

채코 2024. 11. 28. 12:05

직장맘이 되려거든 무조건 시어머님, 친정엄마, 누구든, 근처에 살아야 한다. 주변에 의지할 사람이 없다면 직장맘이 되려면 고민을 숱하게 해야 한다. 아이를 키우며 병원에 데려가거나 돌발 상황에 대처해야 하므로 언니, 오빠, 친척 등 있어야 한다. 정말 중요하니 반드시 명심하기 바란다.

 

그 당시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 남편 하자는 대로 결혼하자마자 시댁 근처에서 산다. 일 년 후 아이를 임신한다. 시어머님이 76세 정도 되었을 때이다. 아이를 맡아줄 것이니 계속 직장에 다니라 하신다. 임신하고 병원에 가지 않고 동네의 아이 받아주는 산파를 찾아가 상담한다. 나의 임신 상태를 체크하는 아기 할매(=일신 조산원/서란희)가 절대 직장을 관두지 말라고 조언했기에 시어머님 말씀에 내심 기분이 좋았다. 시어머님의 아기 돌보기는 한마디로 이것이다.

 

아이는 데굴데굴 키우는 겨.

 

나는 시어머님을 굳게 믿었다. 그리고 그렇게 믿어야지 직장을 편하게 다닐 수 있다. 시시콜콜 간섭하고 예민한 성격이라면 맘 편하게 직장 관두고 아이 보며 사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아이 얼굴을 부비며 사는 것을 좋아하고 한순간도 아이손을 놓고 싶지 않다면 직장 다니지 않는 것이 여러사람에게 가장 좋다. 그러나 나는 아니다. 욕심이 많아서 내 인생의 모든 것을 아이에게 온전히 희생하기 싫었다. 그렇게 잘 키울 자신도 없으며 스스로를 버리고 아이를 위해 살 수는 없다.

 

서란희 원장 선생님의 조언으로 직장에 다니지만 모유 수유를 했다. 전날 회사 화장실(=마땅한 장소가 없다)에서 손으로 짠 모유 2팩을 들고 아이를 유모차에 싣고 시어머님 집으로 향한다. 아이는 울지 않는다. 아이가 떼를 쓰며 울지 않았다고 기억하고 싶다. 내가 출근하면 어머님은 아이를 데리고 동네 마실을 나가신다. 무언가 생기면 동네분과 나눈다. 콩이건 팥이건 나눠주고 채워주니 나보다 동네 친구들이 더 많으시다. 그래서 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동네 어르신들이 예쁘다며 한참 돌아가면서 안아주고 어르고 달래며 커간다. 유모차를 끌고 약방에 가고, 관광버스를 타고 젓갈 사러 갈 적에도 아이를 데리고 간다. 집에만 있지 못하시니 어디든 데려간다. 가는 곳마다 할머니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면서 무럭무럭 자란다.

 

한번은 동네 엄마가 전화가 왔다. 딸이 기저귀 차고 땅을 기어다니며 미끄럼틀을 오르락내리락 한다며 귀가 따갑게 이야기한다. 나는 직장에 다니니 아이가 어머님과 무엇을 하며 노는지 모른다. 관심을 써야 하지만 그렇게 크게 마음 쓰지 않았다. 아이는 흙을 만지며 자라야지 병이 없다며 쫓아다니며 애를 쓰지 않고 다칠까 봐 노심초사하지 않으신다. 그냥 놀이터 이곳저곳을 기어다니며 탐색하게 내버려둔다. 그랬더니 정말 아이에게 건강한 몸을 주셨다.

 

첫째가 무사히 어린이집에 가게 될 적에 둘째를 낳았다. 시어머님은 나이가 많으셔도 아이를 잘 키운다. 나는 절대 간섭을 하지 않는다. 아이 이유식을 깜박해서 안 만들면 어머님이 밥알을 씹어 아이에게 주어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절대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았다. 내가 집에 들어앉아 키울 자신이 없었기에 입을 꾹 다물었으며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다. 아이가 어찌된 영문인지 잔병이 없으며 쑥쑥 잘도 자란다. 한번은 뜨거운 정수기에 손을 가져가 팔에 흉이 된다. 회사를 마치고 된장이 발라진 아이의 팔을 부여잡고 울고 싶었지만 참는다. 화가 머릿 끝까지 나고 속이 쓰리고 아프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것이 현명한 판단이고 싸움이 되면 사단이 날 거이니 조용히 산다. 일을 키워 화를 만들지 않는다. 벌써 일어난 일을 어쩌란 말인가? 뭐든 그러려니 하는 게 속 편하다. 털끝 하나라도 트집잡지 않고 용쓰지 않으며 무사히 직장다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용돈은 매달 30만 원씩 드린다. 그때 그 고마움이 남아 작지만 여전히 그 돈을 드린다. 어머님은 그 돈으로 몸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야채 사다가 다듬어서 김치 담아주고 생선 사다가 소금 쳐주고 날마다 무언가를 주신다. 덥석 받아다가 냉장고에 꽉꽉 채운다. 작은 돈이지만 매달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월급 받으면 제일 먼저 드린다. 그 돈을 드릴 때면 매번 막내며느리가 고맙다며 손잡아 주시고 무척 독하게 잘 살아내고 있다며 시누이들에게 돌아가면서 전화를 돌리신다. 그래서 6명의 시누이들이 나에게 무어라 이야기하지 않는다. 또한 커가는 아이 앞에서 시어머님 흉을 절대 보지 않는다. 친구들 앞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늘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할머니를 치켜새우며 오늘도 용돈을 드리고 왔다며 자랑한다. 또한 딸들에게 할머니의 고마움을 강하게 인지 시킨다. 그래서인지 딸들은 키워준 할머니를 무척 좋아한다. 할머니와 여행 다닐 적에 할머니를 각별히 챙기며 손녀 역할을 잘 해낸다. 딸들의 고운 마음은 긴 시간 같이 보낸 시어머님의 마음과 똑같다.

 

가끔 만나는 동네분들은 아이를 아직도 기억하신다.

 

밤톨이 잘 있지?

 

가끔 엘리베이터에서 동네분을 만나면 한마디 하신다. 데굴데굴 밤톨처럼 귀엽고 튼튼하고 어쩜 그리 똘똘하게 키웠냐며 칭찬을 해 주신다. 직장만 열심히 다녔을 뿐인데 기분이 은근히 좋아진다. 놀이터에서 사방팔방을 기저귀 차고 돌아다니는 아이를 기억해 주는 어르신들이 고맙다. 그 덕에 아이들이 잘 자라 주었다. 비뚫어지지도 않고 예의 바르고 곱게 자라 주었다. 이대로만 자라주면 더 바랄 게 없다.